눈.
블로그의 시작
한때 나도 네이버 블로그를 열심히 쓰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몇몇만이 기억하는 나의 블로그...) 보리 블로그로 시작된 나의 블로그는 2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혈기왕성하게 여행을 하고,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려는 나에게 조그만 안식처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이웃의 이웃을 타고 들어가 검색해보던 재미가 있던 때. 동생과 함께 꾸준히 포스팅을 하자고 약속하고 서로 경쟁하듯 여행기를 올리던 그런 때. 하지만 이젠 내가 포스팅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웃들은 인스타그램의 출현 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광고인지 실제 경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글의 홍수 속에서 간간히 반가운 글들이 보이면 그들만을 부여잡고 보는 중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으며, 싸이 블로그는 사라졌고, 네이버 블로그는 bl... 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네이버와 카카오의 독점에 신물이 난 나는 아무도 모르는 ghost라는 생뚱맞은 플랫폼에 나만의 블로그를 개설하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플랫폼이 바로 이곳이다.
나에게 다가온 고스트의 가장 큰 장점은 셀프 호스팅이 가능하다는 점과 나쁘지 않은 한글 ui, 그리고 직관적인 에디터다. 이메일 구독 기능이 있어 사람들이 나의 블로그에 직접 행차하지 않아도 이메일로 내가 올리는 글들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즉, 블로그와 뉴스레터 그 중간의 어드메쯤이라는 것. 네이버 블로그와 다르게 온전히 내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블로그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 블로그는 이제 노르웨이 생활 9년 차에 접어든 한국인이 심심할 때 쓰는 일상잡변기와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 우연히 발견한 훌륭한 레시피 등이 (아마) 올라 올 예정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Norwegian Noon을 시작하려 한다.
내 이전 네이버 블로그의 제목은 '경계선의 이야기'였다. 혼자서 해외 생활을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하면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을 깨끔발 밟으며 왔다갔다하는 나의 모습을 비유한(?) 제목이다. 물론 지금도 나는 경계자에 해당되지만, 이번에 새로 개설하는 블로그의 제목은 '눈' 이라는 단어를 꼭 넣고 싶었다. 왜냐,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글 단어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눈'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초성과 종성의 니은이 글자를 포근하게 감싸는 모양도 좋고, 겨울에 새하얗게 땅을 뒤덮는 눈의 이미지는 나의 청소년 시절을 관통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나는 눈이 내리며 어둠과 적막이 깔리는 장면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또 눈은 사물을 인지하고 빛을 감각하는 아주 중요한 기관이며, 겨우내 잠자던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영어로 눈은 바쁜 오전을 보내고 기지개를 쫙 피며 다가오는 오후를 맞이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점심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은 한 글자 단어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압축되어 있으니, 노르웨이의 숲을 왠지 모르게 떠오르게 되는 노르웨이의 눈! 이 나의 블로그 제목으로 낙점되었다.